천상병-귀천

천상병-귀천

찰리신^.^~ 7 5,281
1979년 《창작과비평》에 발표한 시로, 같은 해에 간행된 시집 《주막에서》에 실려 있다. 죽음에의 달관을 주제로 하는 이 시에서는 순진무구한 시심(詩心)이 느껴진다. 사용된 언어도 모두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언어들이라 꾸밈없이 담담하게 읽혀진다. 3연 9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연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로 시작하고 있다. 하늘로 돌아간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지만 죽음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이 없는 말투이다. 세상에 대해 미련도 집착도 없는 무욕의 경지를 느끼게 해 준다. 또한 삶의 아픔을 초월한 초인적인 정신세계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제1∼2연은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하늘로 돌아가면서 동반할 것이라고는 이슬과 노을밖에 없다는 말에서 세상을 달관한 시인의 정신세계를 느낄 수 있다. 제3연은 삶의 아름다움을 회상하는 글이다. 하지만 이 속에는 삶이 괴로움이었다는 내용도 숨겨져 있다. 미련과 집착을 버리고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인의 정신을 독백으로 표현한 시이다.?

작가이력 : 일본 효고현(兵庫縣) 히메지시(嬉路市) 출생. 1955년 서울대학교 상과대 4년 중퇴. 1949년 마산중학 5학년 때, 《죽순(竹筍)》 11집에 시 《공상(空想)》 외 1편을 추천받았고, 1952년 《문예(文藝)》에 《강물》, 《갈매기》 등을 추천받은 후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했다.
1967년 7월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가난·무직·방탕·주벽 등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그는 우주의 근원,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하게 압축한 시를 썼다. 1971년 가을 문우들이 주선해서 내준 제1시집 《새》는 그가 소식도 없이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었을 때, 그의 생사를 몰라 유고시집으로 발간되었다.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 또는 ‘문단의 마지막 기인(奇人)’으로 불리던 그는 지병인 간경변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주막에서》, 《귀천(歸天)》,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등의 시집과 산문집 《괜찮다 다 괜찮다》, 그림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 등이 있다. 미망인 목순옥(睦順玉)이 1993년 8월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라는 글모음집을 펴내면서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를 함께 펴냈다.

이 시는 천상병(1930~1993) 시인이 1979년에 발표한 ?귀천(歸天)?의 전문이다. 이 시를 읽다보면 시인의 심성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알게 된다. 본래 천상의 존재였는데 잠시 지상에 소풍 와서 아름다운 아내(문순옥)와 결혼(43세, 1972)하고 재미있게 놀다가 다시 꿈에서 깨어나듯이 돌아간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김만중이 쓴 『구운몽』의 주인공 성진이가 잠시 꿈속에서 지상에 내려와서 8선녀와 희희낙락 노닐다가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 속에는 시인의 우수가 짙게 배어 있다. 그리고 그 어떤 절제의 모습이 그 밑그림을 하고 있다. 죽음을 수용하는 것 같은, 그러면서도 죽음의 고통이나 공포를 초월하는 수용의 자세, 그리고 ‘새벽빛’이나 ‘이슬’(草露人生)처럼 순간적인 인생이라는 허무 같은 것이 이 시의 그림을 이루는 색채라 할 것이다. 그냥 단순하게 인간이 사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그림만은 아닌 것 같다. ‘돌아가리라’는 의지적 표현은 물론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는 표현에도 무언가 반어나 역설이 담겨있는 듯하다. 단순히 어린 아이가 생각하는 그런 ‘소풍’이거나 어른들이 일상으로부터 잠시 떠나는 한가로운 여정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이 시를 쓴 천상병 시인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는 1967년(38세)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의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서울 상대 동창생인 강빈구에게 그가 간첩인 것을 알고 “500원만 내라.”고 공갈 협박했다는 것이다.
또 그는 1971년(42세)에 한 동안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는 사람이나 친구를 만나면 “500원만 내라.”, “1000원만 내라.” 하면서 밥 대신 술만 마시던 그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지인들은 그가 술 때문에 어디에선가 유명을 달리했을 거라고 믿고 가슴 아파하다가 그 해에 유고시집 『새』를 발간했다. 그런데 이 시집은 생존 유고 시집이 되어 버리는 우스운 일화로 남게 되었다.
누군가가 신분증도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것을 행려병자로 알고 서대문의 어느 병원에 수용시켜 버린 것이었다.
“500원만 내라.”고 했는데 1,000원을 주면 거스름돈을 주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 주는 돈은 절대로 받지 않았던 시인. 그러다가 졸지에 온갖 곤욕을 다 치렀던 시인. 이러한 ‘수난과 방황의 연속’이었던 천상병 시인을 두고 사람들은 기인이라고 했다. 이 사회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으며, 아이에 관한 시들도 많았다.
이런 쓰디쓴 삶을 살았던 천 시인은 어떤 세상을 꿈꾸었을까. 아마도 위의 시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거기에 ‘소풍’ 가서 아이들하고 마음껏 놀다가 시간이 되면 돌아가듯 그런 세상을 꿈꾸었으리라. 이런 그의 꿈은 ‘현실적으로는 이루지 못한 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간절한 소망이 담긴 ‘소망형’ 작품이 아닌 ‘~리라’를 사용하는 ‘의지적’ 작품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누가 예술 창작 행위를 질병을 치유하는 행위로 비유했던가. 누가 작가들은 심리 질환 치료를 위해서 작품을 쓴다고 했던가. 천 시인은 ‘참고 있던 말을 내뱉는 문학’에서 한 차원 다른 세계로 이를 삭이고 숙성시켜 억압된 욕망을 왜곡된 형태로 그려내고 있다. 소망 실현의 한 형태라고나 할까. 꿈을 꾸고 있다고나 할까.
삶을 문학으로 표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천 시인은 시인의 세계 속에 그려진 세상을 소묘하듯 담담하게 그려나가면서 자신의 삶과 의식을 작품 속에 반영하고 있다.

ps-그토록 시련이나 방황이 많은분이 왜 이세상을 아름다운 소풍끝내는날이라고말했을까요-.-?


출처-네이버








 

Comments

샤이닝
인사동의 그찻집 아직도 있으려나?????? 
★쑤바™★
나도 읽기 귀찮아.ㅋㅋ 
하늘나라
꼬동아 마지막말 핵심도 말해야지..
여호와를 경외하는것이 인간의 근본인것을... 
됫거든? -♪
그렇지 않아도 내려오는 길에 터미널에서 하늘이랑 얘기했다는...
헛되고 헛되며 모든것이 헛되다... ㅡㅜ ㅋ~ 
찰리신^.^~
지금도 종로구 관훈동에 부인이 경영하는 천상병의 전통찾집에 시인들이 많이 찾는다네요
^.^~ 
sooni
-.-넘 길어서 읽기가 귀찮아요...
읽기 귀찮아서 그냥 뒤로 돌아갈래~~emoticon_007 
명랑!
'귀천'의 천상병 시인은 ...이 세상이
'귀찮'았을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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